일본의 고도(古都)인 교토에 있는 절들을 다녀보면
일본의 전통 문화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가 있다.
흔히 일본 문화라고 하면 언급되는 '인위적'이라는 표현은,
교토의 몇 군데 절만 주의깊게 살펴본다면 쉽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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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들어서면,
길 양쪽에 나즈막한 화초들이 가지런히 심어져있고,
길의 바닥은 비슷한 크기의 자갈이 깔려있다.
정원에는 하얀 모래가 평평하게 정돈되어 있고,
본당으로 향하는 계단은 균일한 색깔이 나는 짙은 갈색 나무로 지어져있다.
본당의 앞뒤에 연못과 아기자기하게 오솔길이 나있고,
오솔길을 따라 조그맣게 졸졸 소리를 내는 시냇물과 적당히 자란 나무들.
계단을 오르면 대나무 숲이 연두색 하늘을 만들고,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잎들이 움직이며 소리를 낸다.
숲을 나오면 다시 고목들과 오솔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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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잡을데 없이 완벽한 구성과 풍부한 표현,
동선에 따라 변해가는 드라마틱한 전개.
하나라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전체가 망가지는 치밀한 조화.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기요미즈데라를 방문했을 때의 감동...
그 감동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내 피부가 반응하여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기요미즈데라를 비롯한 교토 여행기는 곧(!) 포스팅할 예정^^;)
이게 일본이구나.
일본이란 나라가 이런 거구나.
이게 바로 서양이 열광하는 '동양'의 모습이구나.
서양에서 생각하는 또는 서양이 원하는 동양의 이미지를
일목요연하게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느낌이다.
같은 동양인인 내가 봐도 동양의 이미지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낄 정도니...
반면 우리 한국의 이미지는,
일본처럼 쉽게 느낄 수가 없다.
갸들처럼 깔끔하게 정리해놓지도 않고, 예쁘게 꾸며놓지도 않는다.
소박하니 자연을 그대로 두고, 그 안에 인간이 자리잡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지라,
보여주기 위해 화려하게 꾸미거나 일부러 작업하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는,
우리 나라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대도시에서 자란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서양식 사고와 서양식 행동에 익숙해져셔,
우리 나라 고유의 사고방식에 대해 도리어 더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우리 문화에 비해,
일본애들 문화는 너무나 이해하기 쉽게
자연을 재구성하여 좋게 얘기하면 드라마틱하게,
나쁘게 얘기하면 인위적이고 작위적으로, 꾸며놓았으니,
이런거 처음 보는 서양애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이해가 간다.
기요미즈데라, 고다이지, 킨가쿠지, 료안지, 닌나지, 다이카쿠지, 니조조, 난젠지, 긴카쿠지, 도지...
교토에 있는 절과 유적을 3박 4일 동안 거의 다 훑었는데도,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하얀모래였다.
고다이지


료안지

닌나지

긴카쿠지


한군데도 아니고,
내가 가 본 것만 4군데에, 하얀모래가 깔려있다.
하얀모래에는 아주 정확하게 줄무늬가 새겨져있고,
가끔 작은 모래 언덕이 만들어져있기도 하고,
줄무늬가 여러 형태도 잡혀있기도 하다.
자연을 인위적으로 재구성하여 꾸며놓은 것은 알겠는데,
하얀모래.. 이것의 정체는 무엇이더냐.
정원을 하얀모래로 꾸며놓고, 감상을 한다는데...
감상용은 감상용이라고 해도, 왜 저렇게 해 놔야하는 것이냐...
교토 여행 이후에도, 그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는데,
최근 안그라픽스에서 번역된 하라 켄야가 지은 '백(白)'이라는 책이
많은 실마리를 주었다.

그들이 하얀모래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白, 空, Emptiness, 비움...인 것이었다.
白, 空, Emptiness, 비움...등은 일본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에 흐르는 노자, 장자 사상 같은 분위기인데,
우리나라에도 '여백의 미' 같은 표현으로 익숙한 개념이다.
그럼, 왜 白, 空, Emptiness, 비움...이냐라는 건 이해가 간다치고,
왜 저렇게 표현을 한 것일까...
앞에서도 그들이 자연을 표현할 때,
인간이 느끼기 좋고 감상하기 좋도록 꾸며놓는 것처럼,
白, 空, Emptiness, 비움...등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였던거다.
白, 空, Emptiness, 비움...역시도 인위적이고, 의도된 것이라는 거다.
어찌보면 그들에게는 당연할지 모르나,
白, 空, Emptiness, 비움...까지도 인위적으로 표현해내는 그들의 정신을 이해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아니, 서양인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비움조차 표현을 해줬으니...
우리는, 비움은, 비워있는 그대로 느끼면 된다.
비워있으면 비워있는데로 느끼면 되지,
여기는 비워있는 곳이요...라고 일부러 하얀모래를 깔아놓고 느끼지는 않는다는거다.
책에는 이런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유명한 일화로 원에 활짝 피어 있는 나팔꽃을 기대하는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대접하기 위해 일부러 정원의 나팔꽃을 모두 꺾어버리고 다실 안에 한 송이만 살려 두었다는 리큐의 이야기가 있다." (p.102)
끔찍하다-_-
썸뜩하다-_-
얘네들은 이런 애들이다.
그리고서는 좋단다. 이게 바로 '비움'이란다. 젠장;;
'비움' 그대로를 '비움'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극단적인 표현 수단을 통해서 '비움'을 표현해내고야 만다.
그리고, 이런 글귀도 있다.
"사람은 의지를 가지고 자연과 대항하는 존재이다. 고승의 처소 앞에 펼쳐져 있는 하얀 사각형의 돌로 꾸민 정원은 사람의 의지의 상징으로도 보인다." (p.120)
"... 인위적인 행동으로 제어를 되풀이하지 않으면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 자연과 인위의 경쟁 또는 혼돈과 질서의 경쟁이 청소이다." (p.120)
이젠 아예 대 놓고 자연과 대항을 한다고 한다.
우리 동양 사상이 이런 거였나?
나도 동양사상에 문외한이지만, 고딩 때 배운 내용으로 보건데,
동양은 자연을 함께 가는 동반자로 보고,
서양은 자연을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차이점이 있다고 한 것 같던데,
일본애들은 안 그런가보다.
하얀모래 깔아놓고, 그걸 유지하는 것이 자연에 대항하는 일이란다.
白, 空, Emptiness, 비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놓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인 행동으로 제어를 해낸다.
바로 옆 나라 살면서도 이렇게 다른가 싶다.
하얀모래에 대한 궁금증은 어느정도 풀린것 같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엄습해온다.
다른 쪽으로 생각해보면,
일본 디자인의 힘이 여기서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비움'조차도 표현해내려는 의지-
'空'까지도 Design해내는 능력-
희한하게도 서양애들이 더 이해하기 쉬운 동양의 이미지를 가진 일본..
동양애들이 보기에도 이질감 느껴지는 일본..
그래서, 일본 문화가 서양애들한테 먹히는건가 싶기도 하다-_-






































